Kenya의 밤하늘
민당 소시중 교수
Immanuel 교회의 Africa 단기 선교 여행으로 「케냐」를 가는데, 같이 가지 않겠느냐?! 는 전화를 염정식 장로님으로부터 받고 생각하기를 「케냐」라는 나라의 이름은 족히 들어서 알고는 있었으나 아프리카 쪽으로는 여행이 생소한 지역이어서 아내와 상의를 한 후에 마음을 굳히게 되었다. 2005년 6월 27일(月) 밤 10시 30분에 인천공항에 모여서 0시 30분에 出發하는 아랍 에미레이트 항공인 EK323 편으로 시작하는 여행인데 나는 시작부터 007작전의 체험을 하게 되어지는 것이 원래부천의 송내역에서 仁川공항까지의 리무진 Bus가 있어서 소요시간은 1시간이면 충분하기에 밤 9시 30분 行 Bus를 타려고 마음먹고 출발지점에 도착하니 밤 9시 25분이었고 비교적 조급한 마음이 아니었는데 Bus가 밤 9시 20분에 出發해서 끊어졌다는 것이다. 아쁠사(?!) 마음과 눈앞이 깜깜해진다. 불과 5분 사이로...
Bus 기사분이 말하기를 Taxi를 타고 추적하면 막차 Bus를 따라 잡을 수 있겠다고 助言을 하여주어서 그 말대로 잘 잡히지도 아니하는 Taxi를 가까스로 잡아타고 머리를 굴리며 리무진 Bus를 앞지른 지점에서 바꿔 타고 밤 10시 30분까지의 약속장소에 모일수가 있었는데 우리 일행은 흰 모자로 통일되게 表示될 수 있어서 한눈에 띄게 식별하기 좋았고 따로 모자를 가지고 오지 않았어도 될 뻔 했구나! 하는 느낌과 함께 帝王的 인 자세로 서있는 김국도 목사님을 곁눈질 하여 바라보면서 一行 59명이 탑승완료를 할 수 있었다. 비행기에서의 女 승무원들이 모자와 함께 흰 천으로 얼굴을 두른 것으로 보아서 「이슬람」 냄새가 풍겨져 나오는 듯 했고, 기내에서 좌석근처에 앉아 있는 서울의 某 大學 4학년 여학생이 나 홀로 터키, 그리스 등의 국가들을 30일 계획으로 배낭여행을 떠난다고 하는 말을 들으면서 우리나라의 世態도 많이 변하고 있음을 感知할 수가 있었다. 기내에서 눈을 붙이고 밤새껏 비행하면서 AM 5:25에 「두바이」 공항에서 機着하게 되는데 낮에 「두바이」 市內를 관광을 하고 午後 2:30에 케냐의 수도인 「나이로비」공항으로 출발하게 旅程이 되어져 있었다. 「두바이」 공항 청사의 유리 하나사이로 냉․온 차이가 극대극 이어서, 청사 내에는 에어컨으로 차갑고 시원한데 出入門 밖으로 나가면 온도가 45°가 되는 무더운 햇빛 폭염이다. 우리일행은 멋 모르고 밖에 나갔다고 더워서 빠른 걸음으로 다시 청사 안으로 곧 바로 들어오는데 제일 빨리 들어가는 걸음이 서울 남연회 장로 연합회 회장인 김돈식 장로님의 걸음으로 보였다.
중동 지역인 「두바이」는 우리나라와 5시간의 時差가 있으며 모슬렘교 의상으로 두루마기 같은 흰 옷과 얼굴을 천으로 감싸서 활동하고 있으며 2월부터 8월까지는 덥고 9월부터 3월까지는 시원함을 나타내는 날씨이며 섭씨 45°를 나타내는 뜨거운 나라이다. 석유 산유국으로서 석유를 팔아다가 물을 사먹고 사온 물로 잔디와 나무에 물을 주기도 한다. 비가 오지 않아서 공기는 건조하고 공항이 市內 중심가에 있으며, 공항 근처에 주로 도시가 발전되어져 잇고 낙타가 많은 나라로 낙타경기장에 가서 낙타들의 뛰는 모습을 볼 수가 있었으며, 7 Star인 「버주이랍」 Hotel 은 언듯 보면 교회 같은 인식을 할 수도 있는 건축 양식인데 시설이 잘 되어져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버주이랍」 Hotel 주위의 바다는 아름답기가 하와이의 태평양 바다를 연상하리 만큼 아름답다. 山이 없고, 「인도, 영어, 아랍어」를 공통 언어로 하면서 이민제도가 없어서 외국인은 주재원 자격으로 살고 있으며, 공원 내에서의 공작들은 우리나라의 닭과 같이 즐비하게 살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두바이」 공항에서 PM 2:30에 出發하여 PM 6:30까지의 4시간 비행을 通해서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공항에 도착하여 안찬호 선교사님의 안내를 받는데..
공항시설이 「두바이」 공항에 비하여 많이 후졌고 검은색 피부에 어두운색 복장의 공항직원들의 모습에서 검은 大陸에 들어감을 實感하는데, 사실로도 GNP 1000불 정도의 후진성 나라이란다. 우리 一行은 케냐의 수도인 「나이로비」 공항에서 車들에 분승해서 맛사이 族이 살고 있는 지역의 숙소를 向하여 2시간여 동안을 가고 있는데 맛사이 지역에 거의 다 도착하여서 이게 왠일인가? 인디안의 떼강도(?!)들이 창과 칼을 들고 車로 덤벼드는 아수라장(?!)을 이룬다. 그들에게 붙잡혀 묶임을 당한 분도 있고.. 어떻게 놀랬는지(?!) 車를 돌려서 줄행랑(?!)을 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맛사이 族들의 Ceremony의 하나라고 들 해서 어이없는(?!)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어수선함을 지나서 우리 一行은 맛사이 Immanuel 교회에 들어가 찬송과 기도의 예배를 드리고 밖으로 나오는데 케냐 맛사이 지역의 밤하늘은 왜 그렇게 별들이 많냐?! 공기가 맑아서 그런지 하늘에 있는 별들이 바로 머리위에 천정을 이루고 있는데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니 그 많은 별들이 선명해서 마치 겨울에 흰 눈송이 들이 쏟아져 내리는 것 같기도 하고 또는 융단 폭격의 총알들(?!) 같기도 해서 맑은 하늘에 수많은 별들이 나와 함께 있어짐을 한국에서는 느껴지지도 못하고 보여 지기도 안했는데 Kenya의 맛사이 지역에서의 맑은 공기와 함께 새로운 체험을 하는 것이다. Program에 의해서 우리 一行은 1인 1가정의 민박숙소로 배정을 받는데 나는 Anna 女史의 집으로 안내된다. 시골집 울타리 안에는 몇 채의 독특한 토담집 건물이 있고 각각 독립가옥으로서 어머니 집, 형제의 집 등이 모여 사는 Family Town이다. Anna 여사의집 쪽문을 열고 들어가는데 완전히 토굴이다. 허리를 구부리고 기어서 들어간 집 내부는 쪽방 1개, 거실(?!) 겸 방1개 그리고 부엌이 따로 없이 취사와 함께 마당(?!) 공간으로 쓰여 지는 것이 토굴안의 구조이다.
등잔불 하나로 상대방 얼굴도 볼 수가 있고, 지붕은 소똥(?!)으로 덮어져 있다고도 하며, 화장실이 없는 상태인데 주변 모든 땅이 화장실이어서 변을 보고 난 뒤에는 동물들이 깨끗이 치운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집집마다 개들이 다 있는 것 같다. Anna 女史는 남편을 잃은 30세가 되는 과부이고 아들 2, 딸 2의 4명의 자녀가 있으며 이제는 신앙을 찾아서 열심히 살려고 하는 듯 했고, 나를 보고 손님이 왔다고 동네의 이장 쯤 되는 남자이웃을 오게 해서 영어로 대화하며 손님맞이를 하고 있었다. 그러한 환경에서도 자녀 3명이 아침 7시가 되니까 교복을 입고 학교에 가는 모습을 보면서 학교에 가는 아이들의 발걸음에서 맛사이족의 희망을 볼 수가 있었다. 이러한 맛사이족은 이 지역에 25만 내지 30만명 정도가 살고 있으며 「소, 염소, 양」등을 주로 하는 목축업이고 부락에 150명 내지 300명의 주민들이 모여 공동생활을 하고 있으며 사람이 죽으면 시체는 동물들의 먹이가 되게 한다고 한다. Kenya의 「안보세리」국립공원을 가보는 일이 있었는데 광활한 들판의 공원은 끝이 보이지 아니하고 車를 타고 둘러보는 우리에게 野生하며 길러지는 동물들은 왠?! 이방인들이 왔느냐?! 는 표정으로 쳐다들 본다. 특히 목이 긴 기린은 더 노골적인 겁먹은 표정으로 우리들을 직시하는 듯 했다. 우리 車의 Driver가 일행의 차량을 놓치는 바람에 광활한 「안보세리」국립공원을 헤매다가 나중에 공원 안에서 쉬고 있는 「세레라」 Hotel에 一行들이 오게 되므로 해서 같이 간 신성부 장로님과 함께 우리 車의 탑승 Member들은 일행들이 준비해온 반찬 없는 맨밥만을 먹는 어이없는(?!) 체험도 하였다. 「마시이족」과 「캄바이족」의 경계지역에 「엘라이 임마누엘 감리교회」기공식에 참여하는데 「맛사이족」과 「캄바이족」사이에는 평소「양, 소」등의 소유권 때문에 분쟁의 싸움을 하던 형편이었던 역사를 가지고 있었고, 그 중간지역에 교회를 세워서 화해와 평화를 바라는 뜻이 있는데 이 교회는 Immanuel 교회의 장로이신 박남필 장군(육군소장)께서 전역하는 기념으로 재원을 출현해서 세워지는 교회이다. 이러한 모습을 보면서 돈을 잘 쓰는 일의 중요함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맛사이 지역은 가는 곳마다 땅의 먼지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아침에 새 옷을 갈아입고 나가면 저녁에 숙소로 돌아올 때는 몸과 옷들은 먼지로 세탁을 해야만 된다. 그런데 현지인들은 평생을 먼지와 함께 생활을 하게 되니!!... 모처럼 점심을 케냐의 수도인 「나이로비」로 나와서 New Seoul Garden 음식점에서 짬뽕으로 식사를 하고 저녁은 「Nairobi」에서의 제일 좋다고 하는 「사파리파크」Hotel에 들어가서 사우나를 마친 후 12가지 고기만찬을 하면서 쇼도 구경하는 즐거운(?!)시간도 보낼 수 있었다. 엘레리아 임마누엘 남자고등학교 준공봉헌예배에 참석도 하고 이 지역의 23 교회성가경연대회에도 참석하여 봤는데, 엘레리아 임마누엘 남자고등학교는 봉건적(?!)인 생활을 아직도 하고 있는 맛사이 지역에 현대식 교육시설을 세우는 의미를 가지며 Immanuel교회 방진남 권사님의 가정에서 財源을 담당하는 기념학교가 된다고 한다. 준공식에 모인 흑인학생들과 주민들의 희망과 호기심어린 눈빛들에서 이들의 앞으로의 Vision 볼 수가 있었고 각 교회 성가경연대회에서의 신앙심을 표현하는 성가노래와 열정적이고 흥을 돋구는 몸 찬양은 노래를 하는 자들이나 듣고 있는 무리들을 흥분과 은혜의 도가니로 들어가게 하고 마음들이 한 덩어리로 뭉치게 하는 것 같다.
行事 後의 풍성한 고기파티에서 흑인들이 콜라, 환타 음료수병을 호기심 어린 손길로 받아 마시는 모습들을 보면서 먼 옛날 내가 어리고 못살던 시절 美軍이나 미국인선교사들에게 “Chocolate give me를 외치며 호기심어린 간절한 마음으로 눈알사탕, 과자 그리고 다양한 구호원조품들을 얻고, 받아먹던 생각이 회상되면서 이제는 입장을 달리해서 흑인들 앞에 우리가 그러한 모습으로 서 있구나! 함을 느낄 수가 있었다.
맛사이 지역에 세워진 각각 교회로 우리 일행들은 나누어 組를 짜서 찾아가 예배드리는 행사를 하게 되는데 우리가 가는 Team은 박영천 목사님을 팀장(?!)으로 모시고 신성부 장로님, 유복준 장로님, 김돈식 장로님, 소시중 장로들이 「엘라이미러」교회로 배속되어 교인들의 환영을 받으면서 도착하였고, 먼저 「엘라이미러」교회와 함께 세워진 KCPE (Kenya Cer Of Primary Education)학교를 둘러보게 되었는데 지극히 열악한 환경 교육시설인데도 교육에 대한 열정을 엿볼 수 있었으며 인상적인 것은 교무실의 벽에 붙어있는 校訓(School Motto)은 “우리함께 성공하자” (Together We Succeed ) 로 되어져 있어서 잘되어 보려고 하는 意志가 강하게 담겨져 있음을 알 수 있었고 예배시간이 되어서 예배를 드리는 데는 서서 춤추며 찬송하는 감정표현이 풍부한 예배양식과 박영천 목사님의 영어 설교와 현지담임 목사님의 통역으로 진행되었는데,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은혜 받는 예배가 되었다. 「엘라이미러」교회의 교인은 약350명이 되는데 건조기에는 양떼를 몰고 멀리 감으로 해서 참석인원수가 줄어들어 150명 정도이고, 우기에는 집 주위 에서도 목축이 가능해서 참석하는 교인수가 200명 이상이 되어진다고 한다. 담임 목사님의 사례비는 1달에 60$이라고 하며, 예배 중에 서로가 준비한 선물들을 교환하고 예배 후에는 교회에서 베푼 「맛사이」족의 식사를 맛있게들 먹으면서 즐거운 마음과 표정으로 情을 나누었다.
食後 2시 30분에 출발하여 「탄자니아」수도인 「아루사」로 向하여 자동차편으로 달려가는 사막의 길에는 먼지가 너무 많다. 먼지의 연기 속을 달리는 자동차와 함께 우리는 먼지 세례를 4시간이나 받으면서 「Kenya」와「Tanzania」의 국경도시인「Namanga」에 도착하게 되었는데 오는 도중에 광활한 사막의 먼지 속에서도 Driver가 길을 잘못 들어서 헤매는 상황과 옆의 차가 허허 벌판길에서 고장이 나서 2대분의 사람이 하나의 차에 포개어 타고 오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나타내지기도 하였으나 사막의 오솔길이나 어두운 밤중에 車가 고장 나면 어찌했겠나?! 하는 생각도 하면서 아찔한(?!) 마음이 들기도 하였다. 국경지역인「Namanga」도시는 초라함과 무질서를 나타내는 소규모의 도시이며 나라와 나라 사이의 국경의 형태는 아주 간단한 울타리 경계를 하여 놓았고 우리나라 38선에서의 비무장지역과 같은 중간 지역도 형성되었으며 비교적 까다로움 없이 국경을 통과하여「Tanzania」로 入國할 수 있었는데 Kenya 에서와는 달리 도로에 아스팔트가 되어져 있어서 車 가 달리는데 시원함을 느끼고 먼지로부터 해방될 수가 있었다. Immanuel 교회에서 설립한 아루사 신학교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이곳에서 비교적 수준급에 속하는 「메루마운틴」호텔에 투숙하다.
탄자니아는 한국의 4배가 넘는 국토이며 한국과의 시차는 6시간이고 3300만명의 인구에 영국의 신탁통치를 받다가 1961년에 독립되고, 1964년에는 잔지바르오 연합 공화국을 형성한 나라이다. 종교는 기독교가 40%, 이슬람교가 30%, 토속종교가 30 % 등으로 형성되어 있고 호수와 울창한 산림 등을 배경으로 야생동물의 천국을 이루는 관광 개발국의 전망이 좋은 편이라고 한다. 주일(’05.7.2)예배를 AM 10:30에 아루사 신학교 채플에서 드리게 되었으며 「능력받음」에 대한 설교를 김국도 목사님에게서 듣게 되었는데
1. 말에 능력을 받기 위해서는 ①가능성의 긍정적인 말을 하여야하고 ②진실한 말만 사용하고 ③자기에게 긍정적인 예언해야 함과 2. 일에 능력을 자기의 생활과 하는 일에서 받도록 하는 데는 창세기 39장의 요셉의 형통함을 모델로 되어야함을 역설하시는 Message에 모두가 많은 감동을 받으며 예배 중에 찬송과 함께 춤추는 율동은 새로운 형태의 Africa 예배 style임을 알 수 있게 한다. 하나님은 그릇에 따라 축복하여 주심을 새롭게 알게 되는 예배이기도 했다. 응고릉고 내쇼널 공원을 向하여 고급 고속Bus로 가는데 Kenya와 달리 먼지가 없고 숲이 많은 나라라고 할 수 있겠다. 응고릉고 내쇼날 공원사파리에 있는 동물들이 AM 6:30이면 활동하기 시작한다고 해서 우리일행은 AM 6:00부터 일어나서 부지런히 준비하고 응고릉고 내쇼날 공원 사파리를 向하여 이른 새벽의 밤중을 달리고 있었는데 山을 고불고불 올라가는 모습이 우리나라 설악산을 가는데 대관령의 구 도로를 구불구불 올라가던 모습이 연상되기도 하면서 山능선의 고개를 넘으니까 크고 넓은 벌판의 능지에 백두산 천지와 같은 큰 못이 있는데 그 물은 짠맛을 나타낸단다. 크고 넓은 광활한 분지에서는 동물들이 즐비하게 움직이고 있었고, 사슴 같으면서 사슴이 아닌 톰슨가젤, 들소, 물소, 얼룩말 등이 까맣게 무리를 지어서 먹이를 뜯어 먹기도 하고 줄을 이루어서 이동하기도 한다. 개 종류이기라고도 하는데「타이아나」는 큰 숫개와 모양이 같은 편이나 개는 꼬리가 길고 위로 올라가 있으나「타이아나」는 꼬리가 짧고 내리고 있으며 자기가 직접 다른 동물 잡는 법은 없고 잡아 놓아 죽은 동물의 고기만을 먹는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이곳은 동물의 왕국이라고 하는 우리나라 T.V program의 현장이라고 느껴지는데 弱肉强食이 現在하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動物의 帝王이라고 불리어지는 사자(Lion)를 보려고 모든 여행객들이 두리번(?!) 거리며 들판을 찾아서 헤매는데, 아니나 다를까?! 큰 사자 한 마리가 몰소 한 마리의 엉덩이를 물어뜯어서 잡아 놓고 먹이를 지키고 있는 현장의 모습을 옆에 가까이서 볼 수 있었는데 사자는 자기 식구들이 올 때가지 먹이를 못 가져가도록 지키고 있는 것이란다. 오후에는 킬리만자로 山을 등반하고 인도양에 접해있는 「달레샬렘」도시로 向하기로 일정이 되어 있었는데 사자보는데 시간을 너무 과하게 보냈고 또 달레샬렘 市는 PM10:00 以後에는 못 들어가는 Rule이 있어서 많이 들어보고 귀에 읽혀져 있는 유명한 킬리만자로 山의 등반은 못가는 서운함과 아쉬움을 품고 마음을 달래면서 달레샬렘市를 向하고 있는 우리는 BUS로 10시간 이상을 달려간다고 하니 氣가 죽는 마음으로 PM 1:00 넘어서 出發하여 낮, 밤을 계속 달리는 고속 Bus속에서 美國의 西部 L.A에서 San francisco까지 리무진 Bus로 사막을 횡단하던 미국여행을 연상하여 보기도 하였다.
달레샬렘에서의 우리숙소는 인도양 해변에 있는「바하리 비치」호텔인데 해변의 야자수 나무들과의 조화로움과 바다의 아름다움은 하와이에서의 태평양 바다를 바라보며 아름다움을 느끼던 때를 또 회상하게 하리만치 아름다움을 감상하게 한다. 해변의 모래가 실 모래가 되어서 모래인지?! 흙인지?!를 분간 못 할 정도로 밟기에 좋은 해변으로 구성되어져 있고 나는 그러한 인도양의 바닷가를 반바지 차림으로 그리고 맨발로 바닷물을 밟으면서 한없이 걸어보기도 하였다. 바다 물고기를 잡아오는 배의 그물에서 싱싱한 물고기를 정리하는 어부들의 풍속은 우리와 같으나 그러한 일들을 하고 있는 어부들은 새까만 사람들이어서 異質感을 갖게 하는 것이다. 임마누엘 교회에서 개척했다고 하는 현지 교회들은 들를 때 마다 이방인 되는 우리를 환영하고 도와주기를 바라는 그들의 눈빛에서 40여년 前 우리나라에 온 미국인들을 바라보던 한국 사람들의 눈빛을 다시 찾아 볼 수가 있어지며, 외국에 대해서 도와주는 형태가 정부가 아닌 민간차원에서 종교적인 선교의 이름으로 Immanuel 에서하고 있는 일들을 우리는 동참하며 보고 다니는 것이다. 歷史는 이렇게 해서 이루어져 나가는 것이니까?!
탄자니아의 「바가모요」지역은 백인들이 흑인들을 노예로 팔고 사는 노예시장과 노예박물관이 있어서 관람하여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얼마나 백인들이 흑인들을 학대하였는가 하는 잔혹한 행위들을 짐작 하게하기도 하였고, 백인이면서도 聖者인 리빙스톤(1813~1873)은 우리나라 인천 제물포항에 미국인 선교사 아펜젤라와 언더우드 목사가 들어오듯이 「바가모호」 항구로 첫발을 디디며 들어와서 흑인들을 위하여 노예제도를 반대하기도 하고 노예를 보호하는 일을 하다가 이곳에서 죽기도 한 것이다.
바가모호라는 지명에서 ‘모호’라는 뜻은 마음이라는 뜻이 있고 이곳으로 잡혀오는 흑인노예들에게는 노예가 되는 것을 운명으로 알고 마음을 비우고 기쁘게 살라고 주입?!시켰다고 한다. 우리나라 강화도와 같은 섬에 있는 키감보니 교회의 Immanuel 전인학교 준공식에 참석하기도 하고 므사사니교회의 부흥회와 환영음악예배에서 환영받은 후에 이곳지역의 한인회장이고 한글학교 교장인 이태조씨 집에 초청을 받아서 넓은 잔디마당에서 저녁식사를 하게 되는 고급스러움과 여유스러움을 맛보게 되는데, 내가 어린시절 코 크고 눈 파란 미국인들이 자기들만의 화려한(?!) 집안 정원에서의 식사파티의 모습들을 딴 세상 사람들의 모임인양 물끄러미 쳐다보던 시절이 생각나기도 해서 살다보니 삶에서의 연출이 바꿔져 있음을 느끼기도 했다. 돌아오는 비행기 속 창밖으로 내려다보이는 흰 구름바다와 찬란한 햇빛비추임은 흰눈이 쌓여있는 모습 같기도 하고 지금은 7월이라 우리나라의 지상에는 장마의 지저분한 日氣의 환경들을 덮어놓는 역할을 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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