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ipan
지난 96년 5월 30일 새벽 2시30분(현지시각) 남양 군도의 수도 격인 사이판 국제공항에 얼굴을 내밀었다. 마치 타임머신이라도 타고 2개월 가량 앞을 내어 날린 듯 체감온도는 섭씨 35도 가량(?) 한밤중인데도 확 달아 오른 사이판 대지는 일행을 놀라게 한다. "죽었구나" 50 여년전 태평양전쟁 때 뜻도 이름도 모르고 이곳에 징용되어 와서 희생되었던 우리들의 선배 동포들은 얼마나 고생이 많았을까 ?
졸업 여행으로 사이판을 택한 것은 3월 말경부터의 일이다. 지금까지 졸업 여행하면은 제주도인데 그곳은 중, 고 시절에 다녀온 터이며 마지막 학창생활 중 추억 만들기의 으뜸인 졸업 여행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학생대표인 학회장을 중심으로 자료를 수집한 끝에 가장 저렴하면서 해외 여행지가 어디 메냐 찾다가 사이판이라고 결론을 내리고 추진 중이란다.
지도하는 입장에서 최선을 다하여 도와주겠다는 일념으로 반신반의하면서 추진 상황을 점검하였더니 희망자는 많았으나 군 미필자들의 여권 구비 서류가 만만치 않았다. 학장 추천서, 귀국 보증서(재정보증 2인 이상)는 거주지 및 본적지 병무청을 다녀와야 하는 번거러움이 겹쳐서 몇 명은 중도에 포기를 하기도 했다. 그런 어려운 관문을 통과하고 드디어 오월 스물 아흐렛날 오후 5시 30분 김포공항 2청사 2층 외환은행 앞에 집합하여 출국 수속(①수화물 접수 및 신체검사 ②세관 신고 ③출국 심사)을 필하고 7시경 출국 심사대를 통과하여 면세점과 탑승 대기실을 거쳐 8시경 비행기(KE679편)에 몸을 실었다. 항공기 기종은 A300계열로 약 300명이 탑승하였고 좌석은 A~H, 즉 A석과 H석만 창측이고, B, C, F, G석은 복도 측이며, D, E석은 꼼짝못하는 안쪽이었다. 비행기는 정확하게 8시 30분 김포공항을 이륙하였다.
만세(반자이)절벽에서 태평양을 바라보며
승객들은 대부분이 관광객이었고 우리와 같은 4~5개팀의 수학여행 팀도 있었다. 주류를 포함한 음료수의 서비스와 기내식의 제공도 있었으며 여 승무원들의 친절한 안내와 탑승 기념 엽서의 서비스(기내에서 엽서를 작성하여 승무원들에게 주면 돌아가는 항공기 편에 의해서 곧 바로 국내 우편으로 전달하는 서비스) 있었으며, 일행들은 사진 찰영, 담소, 음악 감상 등을 하면서 즐거운 표정들이었고, 고도는 약 9,000피트로 운행 중라는 안내 방송이 있었고 착륙이 가까이 이르렀을 때 귀에 꾀 아픈 통증을 느끼게 한 후 남양군도의 아름다운 섬 사이판 공항에 내렸다. 미리 작성해 두었던 여권과 입국 카드와 세관 신고서를 손에 들고 검은 안색에 체격이 큰 약간의 위압감을 지닌 원주민 입국 심사원 앞에 마치 신입 사원 개인 인터뷰라도 하듯 서서 여권과 입국 카드를 내 밀었다. 거의 대부분이 서류 심사로 통과하였으나 몇몇 일행은 인터뷰가 있었다. "How long do you stay in saipan ?", "3 days.", " What is the purpose ?", "Sightseeing." 무사히 공항을 빠져나와 버스에 올랐을 때 부산 출신이라는 사투리를 많이 쓰는 현지 가이드가 마치 신병 훈련을 마치고 예하부대에 배속 중인 느낌을 들게 하면서 사이판은 관광지가 아니고 휴양지라는 등, 음료수와 강아지를 조심하라는 등, 사이판의 인사말은 "하파다이"라고 한다는데 한국 관광객들은 "하이타이" 라고 한다는 등 떠드는 사이에 사이판 중심지 "가라판"에 위치한 콘도형 숙소인 "Angel house"에 도착했고, 방을 배치하면서도 "도마뱀을 조심하라"는 등 호들갑을 떤 끝에 잠자리에 들어갔다. 25평 가량의 콘도로 여러 사람이 머물기는 불편이 별로 없었으며 구내에 수영장과 식당이 있었다. 그러나 수도꼭지를 돌리는 순간 구역질이 날 정도의 유황 냄새와 소금기가 짙은 물이나와 어려움을 겪었으나 일단 그러한 물로도 세면과 양치질을 하고 나면 별 다른 느낌이 없어져 곧 적응이 되었다. 이국의 첫밤은 젊은이들의 카드놀이와 첫 해외 여행의 이야기꽃을 피우느라 떠들썩하더니 새벽녘에야 조용해졌다.
둘째날 구내식당에서 한식으로 조식을 끝내고, 관광을 떠나기전 가라판 시내의 ‘아리랑‘ 쇼핑센터에 들려서 피부 보호 화장품 또는 음료수이나 햇빛 가리개 등의 용품을 구입하고 나서 사이판 유일의 고속도로(약 4㎞)를 지나고 비포장 길을 달려서 사이판 북부의 ’태평양 전쟁시’에 유명을 달리한 동포들의 원혼들을 위로하는 ‘태평양 한국인 위령 기념탑’에 이르렀다.
마지막 일본군 사령부
한국인 위령탑은 "마피산" 기슭의 태평양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조국을 그리다 돌아가신 분들을 위하여 한반도를 정면 방향으로 세워졌고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강제로 징용이나 징병으로 끌려와서 죽음을 당한 한국인들의 영혼을달래고자 해외 희생 동포 위령 사업회에서 1979년에 세운 탑이라 한다. 일행은 이곳에서 단체 사진을 찍고 역사의 교훈을 되새기며 가까운 거리의 태평양 전쟁시 일본군 최후의 사령부가 있었던 자리, 마피산의 깎아지른 듯한 낭떠러지에 있는 천연 동굴을 이용하여 요새를 만들었고 튼튼하게 만든 콘크리트 구조물들은 폭탄을 맞아 이곳 저곳의 여러 구멍들이 처절한 사이판 최후의 격전지이었음을 한눈에 알 수 있게 하는 일본군의 최후의 사령부가 있었던 "Last command post"에 이르러 일본인들의 최후까지 사수했던 흔적과 그들의 당시 튼튼한 요새 건축 기술을 지니고 있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다음으로 사이판 최북단 만세절벽, 일본인들은 ?반자이?절벽이라고 하는 곳에 이르렀다. 이곳을 보고 누가 전쟁터였다고 말 할 수 있으리! 아득히 머나먼 태평양의 수평선을 눈동자로 좌측에서 우측으로 따라가다 보니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고 태평양의 짙은 물의 색깔을 실제로 보았다. 패전의 기색이 짙어 가던 1944년 7월 7일 일본군이 최후의 공격을 단행했던 곳으로 전세를 역전시킬 수 없었던 일본군들은 그 다음날 수천 명이 반자이(만세)를 외치며 절벽 아래 푸른 바다 속으로 투신 자살하였다 한다.
예정에는 부근의 많은 새들이 해질 무렵 하늘을 새카맣게 덮으며 보금자리로 돌아온다는 새들의 보금자리인 새섬(Bird island)관람키로 되었으나 도로 공사 중이라는 이유로 아쉬움만을 남기고 일부는 숙소로, 일부는 선택관광을 나셨다.
선택관광은 사이판에서 가장 높은 ‘타포차우’산(473m)을 올라갔다가 내려오면서 몇몇 명소를 구경하는 정글 투어였다. 산악 지와 비포장도로에 강하다는 4륜 구동의 승용겸 화물차인 도요다 자동차를 이용하여 십여 명을 태우고 스릴을 느끼면서 "타포차우"산에 올라갔다. 꼭대기에서는 섬의 전체가 한눈에 들어왔다. 동쪽으로는 태평양의 모든 파도가 하얗게 밀려왔고, 개발이 안되고 천연 그대로 보존이 되어 있고 원주민들이 많이 산다는 ?단단?지역으로부터 ?올드 맨 바이 더 시?가 보였고 , 서쪽으로는 ‘수수페’ 시가지, ‘가라판’시가지, 산호초에 둘러싸인 ‘마나가하’섬등이 보였고, 남쪽으로는 사이판 국제공항과 한국의 어느 할아버지 관광객이 자기 동네 웅덩이 같다고 했다는 사이판 유일의 ‘수수페호수’가 보였고 멀리 2차 세계대전시 원자폭탄을 탑재했다는 ‘티니안’섬과 한국인들이 많이 살았다는 ‘로타’섬이 보였으며, 북쪽으로는 ‘마피산’과 위령탑과 만세절벽 그리고 희미하게 새섬까지 보였다. 꼭대기에는 나무 십자가가 세워져 있었다. 원주민들은 이 ‘타포차우’산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이라고 한다고 자부한다는데, 이유인즉 필립핀 해구 중 세계에서 가장 깊은 ‘마리아나’ 해구(11,034m)가 가까우므로 해구를 기점으로 하기 때문이라 한다.
내려오는 길에 깊은 정글을 누비며 TV연속극 ‘여명의 눈동자’를 찰영하였다는 ‘제프리 비치’(Jeffries beach)에서 산더미 같이 밀려오는 파도를 탓으며, 해변의 바닥은 진흙이 굳어서 바위가 된 느낌이었고 무릎 아래 오는 물은 온천물과 같이 따뜻하였고 절벽들은 곧 무너질 것 같은 공사장의 흙더미와 같은 검붉은 바위들로 이곳이 아니면 보기가 어려운 모습이었다. 다음으로 원주민 농장에서 미스타?죠?라는 이름의 원주민 아저씨에게서 야자수를 선물로 얻어먹고, 닭싸움도 구경하고, 커다란 도마뱀과 같은 ‘이구아나’와 사진도 찍고 나서 사이판 유일의 먹는 물이 나오는 기적의 샘에서 생수를 마시고 성모 마리아 상에서 소원을 기원하고 숙소로 돌아와서 수영을 하고 나서 사이판 중앙부의 ‘코리아 타운’ 근처의 원주민 식당에서 원주민 음식으로 저녁을 먹고 난 후 일행중 한 분의 친구 분의 안내로 ‘비치로드’의 중간 부근에 있는 한국 분이 운영하는 ‘골드비치호텔’ 라운지에서 음료수를 들면서 이곳 생활에 대해서 이야기를 듣고 숙소로 돌아 왔다.
셋째 날은 해양 스포츠를 즐기기 위해 “수수페”지역의 사이판 그랜드호텔 앞 비치에 도착했다. 야자수가 그늘을 만들고 휜 플라스틱 제품의 벤치들이 있었다. 다섯 개의 조로 편성하여 ‘젯트 스키’ 조와 ‘바나나 보트’ 조를 제외한 세 개의 조는 수영과 스킨스쿠버로 대기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바다에는 2차 대전시의 대포 등의 잔재들이 그대로 있었으며 그것들은 훌륭한 열대어들의 아파트 역할을 하고 있었고 물안경을 쓰고 물 속을 드려다 보았더니 수족관이 따로 없었다. 일행 중 몇몇은 열대어를 잡아 보겠다고 상의를 벗어 엉성한 임시그물을 만들어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쫓아다녔지만 수확은 없었고, 애꿎은 상체만 작렬하는 태양 볕에 익히고 말았다. 순서가 되어 젯트 스키에 올랐다.
부표를 세 곳에 뛰어 놓고 반시계 방향으로 원을 그리며 돌아야 했다. 세 바퀴를 돌고 보니 힘이 들어서 교대를하였으나 젊은이들은 십여 바퀴씩을 타고 즐거워했다. 다음은 바나나 보트로 7~8명이 바나나 모양의 기구로 된 무동력 보트에 타고 모타 보트가 끌어 주는데 십여 리 가량 북쪽 해변으로 갔다 오면서 바나나 보트를 4~5차례 전복시키면서 탑승객들을 물 속에 넘어뜨리면서 재미를 만끽하게 하였는데 이곳 바다는 산호초로 둘러 쌓여 있어서 깊이가 1 m 내외로 천혜의 해양 스포츠를 즐기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도시락으로 점심 식사를 하고 가이드는 ‘마나가하’ 섬의 선택관광을 추천하였지만 사정이 여의치 못하고 피곤하여 숙소로 돌아와 구내 수영장에서 수영을 즐긴 후 가라판 시내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렌트카를 이용하여 하파다이 호텔 앞의 쇼핑센터에서 선물을 구입하고 잠을 청하려 하였으나, 주위 환경과 새벽에 항공기를 탄다는 부담 때문에 일행들과 어울리다가 현지 시각 새벽 1시에 버스 편으로 사이판 공항에 와서 출국 수속을 마치고 면세점과 탑승 대기실을 경유하여 탑승(KE680)하여 새벽 3시에 사이판 국제공항을 이륙하였다. 오는 길의 좌석은 B석으로 밖을 주시할 수가 있었고, 한밤중의 사이판의 야경은 휘황찬란하였으나 이내 은하수처럼 멀어졌다. 비행기는 달을 따라 북서쪽으로 날아갔고, 비행기에서 보는 달은 한참 아래로 내려다 보였으며, 둥근 지구 위에다 9,000 피트의 상공이기 때문임을 알았다.
기내 승객들의 표정은 갈 때와는 달리 여독으로 인하여 피곤해서 인지 조용했고 한반도 상공에 왔을 무렵 동이 터서 비행기는 거미줄 같은 고속도로와 성냥갑을 쌓아 놓은 듯한 아파트 숲을 지나 인천 앞 바다 쪽으로 돌아서 김포공항에 착륙함으로서 우리들의 3박4일의 여정이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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