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록도와 애양원 수련기 (인천제일교회 제2청년부와 함께)김상남 장로 2001년 8월 12일(주) 저녁 예배 후 저녁 9시 스타렉스와 겔로퍼로 제 2청년부 여름 수련단 일행이 교회를 출발하여 인천-신갈-경부고속도로(안성휴게소)-호남고속도로(여산휴게소, 백양사휴게소)-남해고속도로(곡성휴게소)-송광사-낙안읍성-벌교-고흥-도양읍(녹동항)-소록도(북성교회등)-도양-나로도-녹차단지(보성)-순천-애양원(신풍)-여수(오동도)-순천-남해고속도로(곡성휴게소)-호남고속도로(여산휴게소)-경부고속도로-신갈-인천(교회)으로 돌아와 2박 4일의 일정을 은혜 중에 마쳤다. << 내려가는 길 >> 2박 4일이라는 특별한 일정이라 개운치는 못했으나 청년들의 계획과 새벽 운전보다는 한밤 운전이 좋다는 선택 때문에 따르기로 하고 출발하였다, 안성휴게소에서 유명한 '입장 거봉포도'를 맛보고, 한가한 고속도로를 달려 여산 휴게소(논산-전주사이)에 이르니 예정시간보다 속도가 빠른 것 같아서 충분한 휴식을 취하면서 가기로 하여 슬로우 슬로우 하면서 백양사(전남장성)휴게소에서 맑은 공기를 마시며 남해고속도로(부산-광주)로 접어들어 곡성휴계소에서 마지막 휴식을 취하고 주암(송광사)인터체인지에서 27번 국도를 따라 주암호 변을 휘돌아 송광사에 이르니 <8월 13일> 새벽 동이튼다. 신록의 아름들이 나무들과 아름다운 꽃들을 보면서 고찰을 둘러보고 27번 국도를 따라 '낙안읍성 민속마을'로 들어가 아침식사 할만한 식당을 찾았으나 준비된 식당을 찾지 못해 벌교읍에 나와서 반찬이 푸짐한 남도의 백반으로 아침을 먹고나니 녹동(도양)항에서의 약속시간 때문에 `나로도`는 나올 때 둘러보기로 하고 고흥읍에서 점심과 저녁준비를 한 후 녹동항에 이르니 북성교회 '남효선'장로님과의 약속시간보다 빨랐으나 사모님과 통화하니 들어와도 좋다는 언질이 있어 차와 함께 우리 일행은 소록도로 배를 타고 들어갔다, << 소록도(小鹿島)에서 >> 녹동항의 테이프 파는 노점상에서는 찬송가와 복음성가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소록도로 가는 배에 올랐다. 좋지 않은 선입견과 별다른 정보 없이 소록도에 들어올 수 있는 용기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면 감히 용단 내릴 수 없을 것이다. 섬에 들어서자 안내하는 사람들이 모두가 한센병을 겪었던 흔적을 지닌(손가락, 얼굴 등)분들이었으나, 표정들은 밝았으며 활기찬 느낌을 주었다. 우리 일행은 몇 곳의 안내를 받아 섬의 가장 끝 부분 북생리에 있는 북성리 교회에 도착하였다. 이곳 사람들의 생활은 새벽 3시 '새벽기도', 가정예배, 정오 나라를 위한 기도회가 매일 반복된다는데, 도착한 시간이 정오 경 인지라 교회 앞 나무 그늘의 평상에 10여명의 성도님들이 찬송을 부르고 있었다. "나 위하여 십자가에 중한 고통 받으사....(찬 403), 우리 일행은 준비해온 점심을 코펠 버너를 이용하여 끝내고 나무 그늘에 모여서 '천우열' 전도사님의 '찌라도'에서 만난 하나님이라는 말씀을 들으며, 은혜를 많이 받았다. 중앙교회 교역자로서 순회 교역을 담당하신 "천우열 전도사님"의 말씀을 들은 후 북성교회 "남효선 장로님"의 안내로 소록도 전역을 둘러보았다. 격리 수용소, 최초로 기독교를 받아들여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준 일본인 원장 "하나이 젠기스(花井善吉, 1921. 6. 23 ~ 1929. 10. 16)원장"의 기념비, 여러 교회의 중심이 되고 연합교회 사무실이 있는 중앙교회, 이곳 구성원들이 아름답게 만들어 놓고, 구라탑과 '한하운' 시인의 시비(보리피리)등이 있는 중앙공원, 국립 소록도 병원의 북성교회 권사님 병실 심방, 마지막으로 소록도 해수욕장에서 아름다운 남해의 주변 섬들을 바라보면서 발욕(발목까지만 수영)을 하고 숙소인 북성교회로 돌아와서 저녁식사을 삼겹살 백반으로 해결하고, 개인기도 후 5실의 방에 나누어 취침에 들어갔다. <8월 14일> 새벽 3시30분에 부장 집사님의 모닝콜에 의해 취침하여 북성교회 본당에서 4시에 파송 된 전도사님의 말씀과 6분의 성가대, 3분의 당회원, 나머지 10여명의 교인과 우리 일행이 새벽기도를 마친 후 짜투리 취침을 하고 6시경에 세면 후 짐 정리를 하고 7시경 북성교회를 출발 7시 30분경 선박편으로 소록도를 떠났다. << 소록도(小鹿島)에서 나로도, 보성다원을 거쳐서 애양원까지 >> 녹동항의 터미널 부근의 기사식당에서 남도의 백반으로 아침식사를 하고 도양읍(녹동항)을 출발하여 851번 지방도로를 타고, 환상의 남해안 드라이브 코스로 풍양면, 도화면을 거쳐 내나로도를 거쳐 항공우주센터가 건설될 외나로도의 봉래중학교 앞에서 돌아 나와 덕흥 해수욕장을 거쳐 나로도 드라이브를 마치고 15번 국도를 따라 고흥읍 외각도로, 남양면에서 855번 지방도로를 따라 보성군 조성리에서 2번 국도, 보성읍에서 남쪽으로 18번 국도를 따라, 8 Km 다다르니 "보성다원"에서 20여미터 가량의 대나무밭(011선전장소,다모찰영지), 삼나무 숲, 활성산 자락의 끝없는 차밭을 보고, 차 수제비국으로 점심을 먹고 18번국도, 4차선으로 잘 정돈 된 2번 국도를 따라 벌교, 순천을 거처 17번 순천-여수국도를 따라 약속시간 조금지나 여수공항 바로 뒤편, 여수시 율촌면 신풍리 1번지에 위치한 애양원(愛養院 : 061-682-7515(교회) 061-682-9534(기념관))의 한센병으로 애양원에 들어와서 합병증으로 시각장애인인 된 노인들이 성경암송으로 주님께 영광돌리는 모임인 성서반에 도착했다. << 애양원에서 >> 오후 3시경 애양원의 "성경암송반"에서 서울 신월교회 청년들과 한팀을 이루어 19세때 입원하여 "손양원 목사님"께 세례를 받고 60년 동안 이곳에서 계신다는 "양재평 장로님"의 인도로 10여명의 회원들이 계시록 7장을 암송하였고, 롬14:7-8을 말씀으로 "나 중심이 아닌 하나님 중심의 생활을 해야 된다"는 요지와 나병이란 고난을 당하여 애양원에 왔고 합병으로 소경까지 되는 고난으로 성경 암송반을 조직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렸으며, 경성제대를 갈려고 했었는데 천국에 갈 수 있는 특권을 받았으니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시119-71)는 간증을 듣고 신월교회와 제일교회가 특송을 부르고 손양원목사 삼부자 묘를 거쳐 손양원목사 순교기념관에서 전시물을 관람하고 기념관 1층의 2개의 예배실을 숙소로 짐을 풀고 애양원 밖으로 나가서 저녁식사(기사식당)를 하고 숙소로 돌아와 김호임전도사님의 인도로 기도를 마치고 취침에 들어갔다. <8월 15일> 새벽 3시 30분 부장 집사님의 모닝콜로 일어나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가운데 예양원 교회(성산교회)로 이동하여 30분 개인 기도후 4시 30분에 새벽 기도회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 8시까지 짜투리 취침을 하고 짐정리 후 애양원 역사박물관을 관람할 예정이었으나 개관을 하질 않아 9시 30분경 애양원을 나와 여수 시내를 통과하여 "오동도"에서 11시경 아침겸 점심을 하고 오동도 관람 후 다시 애양원을 들러 애양원 초창기부터 현재까지의 사진 및 사용되었던 의료기 등이 전시된 "애양원 역사박물관"을 관람하고 2시 30분경 애양원을 출발하여 순천 IC로 고속도로에 진입하여 곡성휴게소, 여산휴게소를 경부고속도로 버스전용차로를 이용하여 거쳐 7시 50분경 인천제일교회에 도착하였다. 은혜 중에 마친 수련회에서 느낀 점을 요약하면, 한센씨 병(나병)의 선입견 때문에 정신적으로 어려움이 있었으나 현대 의학에 의해 극복된 병으로 현재는 발병하지 않고, 발병한다 하더라도 약만 복용하면 치료가 된다는 사실로 방문한 우리 일행도 자유함을 얻었으며, 소록도의 주님의 백성들은 인간적으로는 가족에게 외면 당하고, 후손도 없고, 현재 가진 재물도 없지만(찌라도), 그로 인하여 주님만을 붙들고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천국을 확신하며 하루하루 즐겁게 지내고 있으며,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시50:15)말씀과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찌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합 3:17∼18)란 말씀을 붙들고 있으며, 주제 찬송은 "나 위하여 십자가에 중한 고통 받으사 대신 죽은 주 예수의 사랑하신 은혜여....."(찬403)를 늘 부르시며 생활하심에 은혜를 받았다. 애양원도 소록도와 같은 한센씨병으로 고통받았던 분들을 위주로 구성된 믿음의 공동체들로 구성되었고, 소록도에 비해서는 출입이 자유로와서 어느 때나 방문이 가능하였고, 그 분들의 생활은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시119-71)는 말씀을 붙들고 육체적으로 정상인인 저희들을 감동시켜 주셨고 주님 안에서 즐겁게 살고 계셨다. <암송반 반가> 우리들의 인생은 (곡:성경암송가) 1. 우리들의 인생은 일흔 살부터, 마음도 몸도 왕성합니다 70에 우리들을 모시러 오면 지금은 안 간다고 전해주세요 2. 우리들의 인생은 일흔 살부터, 언제나 생글생글 웃고 삽니다 80에 우리들을 모시러 오면 아직은 빠르다고 전해주세요 3. 우리들의 인생은 일흔 살부터, 아무 것도 불만은 없이 삽니다 90에 우리들을 모시러 오면 재촉하지 말라고 전해주세요 4. 우리들의 인생은 일흔 살부터, 언제나 감사하며 살아갑니다 100세에 우리들을 모시러 오면 서서히 간다고 전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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