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순례

성지순례(holy land pilgrim) -2부-(이스라엘)

ksn7332 2005. 9. 29. 13:27
 

성지순례(holy land pilgrim)-2부- 김상남 교수

  타바를 통과하면서 세상이 달라 보인다. 3,000$소득의 이짚트와 20,000$소득의 이스라엘의 차이라고 가이드 최은호목사님은 말한다. 푸른 물이 출렁대는 바닷가엔 휴가를 즐기는 수영객들이 있었고 바다건너에는 요르단의 요충항인 “아카바”항이 보이더니 조금 더가니 이스라엘의 남쪽항 “에일라트”에 이른다. 각국에서 수입된 자동차들이 산적해 있고, 비행장도 있으며 활기가 넘치는 도시를 뒤로하고 네게브 사막을 가로질러 였으며 “사막에 물이 넘쳐흐르리라” 복음송과 같이 사막한 가운데 종려나무 농장이 군데군데 있었고 나무 한 그루마다 인공 물줄기를 비닐 호수를 통해서 공급하는 모습을 보면서 “철 따라 우로”를 내려주는 우리나라 금수강산을 생각하며 마음속으로 감사의 기도를 드리면서 달리다 보니 비가 올 때만 하천이 되는 메마른 계절천(와디)군을 지나서 어느덧 소돔과 고모라 땅에 들어서 뒤돌아보다가 소금기둥이 되었다는 “롯의 처” 바위에 도착하여 온통 땅이 소금기로 이루어진 것을 확인하고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뒤돌아 서지 않겠네” 찬양하며 해발-400m의 사해(dead sea)를 옆으로 하고 산 위의 도시인 아라드(해발 600m)에 도착하여 인바(inbar)호텔에 이스라엘의 첫 밤을 보냈다. 비교적 작은 호텔이었지만 실내 수영장이 있어서 날씨도 후덥지근하여 일행들과 수영장에 갔더니 작은 풀장은 사해 물이고 큰 풀장은 일반 물이므로 사해 물에서 뜨는 것을 확인하고 취침에 들어갔다.       

  

  3월30일 아라드를 출발하여 다시 사해 근처로 내려오니 1000m의 위치차로 인해 귀가 멍멍해진다. BC 40년경 헤롯이 유사시에 대비하여 쌓았다는  이스라엘 최대의 요새 “마사다(Massada)"에 도착하여 5분여 슬라이드를 보고 케이블 카로 사해면 610m 높이의 현장에 도착하여 물 저장 탱크, 헤롯 궁전, 목욕탕 등의 시설을 보았다. 이곳은 AD70년 로마의 ”티투스“ 장군이 예루살렘을 침공할 때 항쟁하다가 960명의 유대 애국지사들이 ”엘리아살 벤 야일“의 지도하에 이곳에 와서 마지막 항쟁을 하다가 3년 포위 끝에 공격용 토성을 쌓고 올라오는 로마군에게 함락되기 전 최후의 날이 온줄 알고 로마군에게 항복하여 노예가 되느니 스스로 죽음을 택하기로 결의하고 모두가 죽고 말았다는 곳으로 역사가 요세프스는 ”죽음이 재앙이 아니라 살아있는 것이 재앙이다. 우리 아내와 자식들이 욕을 당하고 노예가 되는 것을 볼 수 없다. 우리에게자유가 있고, 칼이 있을 때 자유인으로서 영광스럽게 죽자“는 연설을 하고 제비 뽑아 열사람을 택하여 이들이 칼로 모두를 죽이고 다시 열사람이 한 사람을 아홉 사람을 죽인 후 자신은 자결하였다 하는데 이 사실은 마사다를 점령하고 수색도중 식량창고에 다섯 명의 어린이와 두 여인이 살아 있었는데 이들의 입을 통해 전해졌다 한다.  모두들 마음이 숙연해 하면서 마사다를 내려와서 ”엔게디“에서 지구상에서 유일한 해면보다 400m 나 아래 위치한 사해호수에서 수영을 하고 그 옛날 크래오파트라가 즐겼다는 ”머드팩“도한 후에 사해변의 프른 초장에서 점심(한식도시락)을 먹고 사해 사본으로 유명한 쿰란에서 설명을 듣고 쇼핑을 한다음 좌측에 엘리야 기념 수도원, 우측에 모세가 가나안 땅을 내려다보면서 죽은 "느보산"을 동쪽으로 멀리 올려다 보면서 서쪽으로 예수님의 시험산을 보면서 아쉽게도 분쟁으로 삭개오의 뽕나무 동내인 "여리고"(팔레스타인 자치령)를 우회하여 가나안 복지 땅인 요단강변을 따라  에브라임산지, 사마리아산지. 얍복강을 지나길 보아산과 벳산을 지나 갈릴리(-200m)바다(디베랴호수)도착 하였다.

                                             이스라엘의 요쇄 "마사다"

                                                    해발 -400m의 "사해"

 

  갈릴리 호수에서 사해 쪽으로 흐르는 강이 요단강인데 비가 적은 지방이라 요단강이라기 보다는 요단 개울이라 할 만큼 물의 량이 적었고 호수하수구 쪽은 물이 많은 편으로 이곳이 예수님께서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았던 곳으로 오늘날도 침례교 순례자들은 이곳에서 가끔 세례를 베풀기고 한다는데 팔뚝 만큼한 메기(유대인들은 비늘 없는 고기는 먹지 않으므로)들이 “고기반 물반”일 만큼 많았다.

  버스가 도착한 곳은 “티베라아”시의 갈릴리호수 선착장으로 예정된 선상예배를 드리기위해 배를 타려하였으나 큰 유람선은 우리 일행이 예배드리기에 적합치 않아 한참을 기다리다 예수님 당시의 배와 크기가 같게 제작했다는 작은 목선을 타고 호수 한가운데에 이르러 예배를 드리고 티베리아시에 위치한 호수가 내려다 보이는 티베리아 호텔에서 여정을 풀었다.


<사역지에서 ...>

  티베리아 호텔은 이스라엘의 풍습이 밤 시간에 결혼식을 올리는 지 찬치 분위기였으며 한쪽 홀에서는 신랑 신부와 친구 친지들이 춤을 추며 연회중이였는대 일행중 몇분이 구경을 갔더니 끌어당겨서 같이 어울리기도 하였고 앞에 호수가 내려다 보여서 전망도 좋았다.  아침에 새들의 노래소리에 일어났다. "예쁜새들 노래하는 아름다운 갈랄리"답게 새소리 때문에 모닝 콜보다 훨씬 일찍 기상하여 헬몬산의 만년설을 멀리 바라보며 호텔 조식 후 주님의 사역지로 달려 첫 번째로 막달라 마을의 “막달라 마라아 묘”를 보면서 "휘어져 추수할 때"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상기하면서 들판을 바라보면서  예수님의 사역지인 오병이어 교회에 다다르니 아담한 기념교회내부에 예수님께서 축사하셨다는 장소에 보리떡4개와 물고기 2마리가 모자이크되어 있었는데 보리떡 한 개는 들고 축사하시는 중이라고 하였다. "깊은 곳에 그물을 던저라"라는 주님의 명령으로 "주는 그리스도요..."고백했던 곳과 가버나움, 팔복교회, 고라신등을 순례하고 가나 혼인잔치로 유명한 "가나"를 거쳐 이새 줄기의 가지란 뜻을 가진 예수님의 고향 “나사렛”이 이르러 마리아의 “수태고지교회”를 거처 이스라엘 수박 맛도 보고, 갈멜산밑 교민 댁에서 점심 식사 후 “엘리야” 선지자가 바알신과 아세라를 물리친 갈멜산 수도원에서 기손강을 내려다보면서 민족과 교회를 위해 통성기도도 각각의 기도처소에서 드렸다.

  이스라엘의 최대 평야인 “이즈르엘”평야를 지나 가나안의 정복의 가장 으뜸으로 중요시했다는 “므깃도”에 이르러 악명 높았던 “아합왕”이 용수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하터널을 건설했다는 거대한 지하터널을 통과하여, BC20년경에 헤롯이 로마황제 가아사 아우구스투스의 이름을 따서 건설했다는 지중해연안의 고도 “가이사랴”에 도착하였다. 500년간 총독부의 본부(수도)로 사용했다는 거대한 도시로 원형경기장 등 거대한 유적들을 둘러보고, 이스라엘 최대도시인 “텔아비브”를 거처 거룩한 성이 있었던 “예루살렘”의 “샬롬”호텔에 도착하였다.

                                             주님께서 사역사셨던 "가버너움"

 

  샬롬호텔에 도착한 날은 안식일 다음날(토요일)이라 안식일 휴일을 호텔에서 가족단위로 보낸 전통 유대인들이 긴 수염과 검은 의상들을 입고 층층마다 여러 무리들이 있었다. 1박후 주일아침이라 2층 특별실에서 주일예배를 드리고 예루살렘시내 관광을 위해 첫 번째로 간곳은 예루살렘성전과 기드론 골짜기등 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성전 동편 언덕에 유사시에는 “벙커”역할을 할 수 있게 설계되었다는 히브리대학(6일 전쟁이전에는 요르단땅)에서 한눈에 예루살렘의 구시가지 전체를 내려다 보면서 설명을 들은 후 승천교회, “학개”선지자 무덤, 눈물교회, 미문을 바라보면서, 주님께서 나귀타고 호산나하고 입성하신곳(지금도 나귀와 아랍인인 있슴), 아론의 살구나무, 겟세마네 동산, 스데반 기념교회, 골고다 언덕, 십자가를 메셨던  14곳의 처소. 마가의 다락방, 경계가 삼엄했던 “통곡의 벽” 등등 관광후 불렛셋과 이스라엘군의 분쟁이 한창인, 팔레스타인 자치지구인 베들레헴(예수님 낳으신곳, 다윗의 여호와는 나의 목자불렀덤곳, 모압여인 롯이 보아스를 만난곳)을 어렵게 옵션으로 순례하고 “용서는 하되 잊지는 말자”라는 슬로건을 내세운“유대인 학살 기념관”을 관람하고 다시 샬롬호텔로 돌아와 1박후 “가자”지구를 통해서 이짚트로 들어갈 예정이었으나 한창 분쟁 중이라 국경이 폐쇄되었다는 통보로 넘어왔었던 아카바만의 “타바”국경을 통하여 약1000km를 달려서 카이로에 와서 카타락트 호텔에 도착하여 김일권 선교사내외분과 만나서 망고 쥬스을 마시면서 황치현 전도사님의 부탁물건과 오동헌군의 선물인 호박씨를 전달받아 1박후 15시간의 항공기를 타고 “두바이”를 경유하여 “지구상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 “ 삼천리 금수강산”, “철따라 우로도 내리고 4계절이 확실한 사랑하는 나의 조국” 인천공항에 돌아왔다. 중동지역은 봄, 가을 이 없어서 벌써 35~36도를 오르내리는 한여름으로 땀을 닦으며 물을 마시며 다녔으며 광활한 땅으로 “버려둔 땅”, 어쩌면 “남겨둔 땅”들이 많았으며 몇 시간을 달려도 끝없는 사막이었고 그곳의 강수량은 년간 10~50mm로 물만 있다면 옥토일것 같았다. 이짚트는 땅은 넓고 인구도 많았으나 나태하여 못살고(3000$), 이스라엘은 물관리를 잘해서 “젓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스스로 땀흘려 건설하면서 그들의 꿈을 실현해 나간다는 느낌을 감명 깊게 받았다.(20000$).

                                      히브리 대학에서 바라본 예루살렘성

 

                                         예루살렘성의 서쪽벽 "통곡의 벽"

 

 

  이번 성지순례를 통하여 지금까지의 성경 이해에 도움이 많을 것 같으며, 나의 마음 밭을 기경(起耕)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9박 10일 동안 출애굽 여정과 주님께서 낳고, 자라고, 사역하시고, 부활 승천하신 성지를 순례하는 동안 지켜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3박자(시간, 금전, 건강)를 갖추지 못하여 성지순례를 못 다녀오신 권속 여러분께 죄송한 마음을 가지며 보고를 마칩니다.

                          

                            2001년 4월 6일 홍보부  김 상 남 장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