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순례

성지순례(holy land pilgrim) -1부-(010326 이짚트)

ksn7332 2005. 9. 29. 13:19
 

성지순례(holy land pilgrim)-1부- 김상남 교수

하나님의 은혜로 몸담고있는 학교의 안식년(연구년) 기회를 이용하여 9박10일의 이짚트, 이스라엘 성지순례를 다녀왔습니다.(극동방송주관으로 천지항공팀: 목사 12분, 사모 9분, 장로 5분, 권사 3분 집사 3, 기타2분 합계35명)


<출발에서 애굽 정착까지>

 지난 3월26일 밤9시30분 대한항공(KE951편)으로 김포공항을 이륙하여 4월4일 새벽 6시 대한항공(KE952편:좌석 55D)으로 인천공항에 착륙하였다....

떠난 비행기는 남으로 제주부근에서 상해, 남경, 미얀마, 인도상공을 날아 두바이(아랍에미레이트) 공항에서 1시간 반을 기착한 후 무려 17시간 만에 세계3대 문명발생지의 하나인 아프리카의 북단 나일강 하류인 이짚트의 수도인 카이로 공항에 착륙하였다.  연락이 되었던 김일권 선교사님이 공항에 나오셨으므로 오동헌군이 전한 고추장 등과 본인이 준비한 라면 한 박스와 김포공항 면세점에서 산 약간의 김을 전달하고 저녁에 호텔에서 재회할 것을 약속하고 일행과 합류하여  3끼의 기내식에 속이 더부룩함에도 불구하고 아침 9시(한국시간 호후4시: 시차 7시)라고 아침 식사(한식:池食堂,나일강 건너편)를 간단히 하였다.

  이짚트의 “고고학 박물관”에서 물병을 차고 땀을 닦으며 죽은자들을 위한 문화라 불리는 웅장한 석조 조각물들을 보았는데 당시의 모든 사람들이 왕과 신전만을 위한 삶이었고 왕과 왕족의 “미라”라든가 그 특정인들의 생활사만을 부각시켰고 백성들의 생활사는 보기 어려웠다.

 

 아기예수가 베들레헴에서 탄생했을 때 헤롯의 죽임을 피해 애굽으로 피난했던 예수님의 피난처인 아기예수 기념교회와 근처의 모세가 출애굽할 때에 예배드렸다는 교회와 이짚트의 기독교 콥틱교회를 돌아보았으며 회교국가에서 어렵게 지탱해 가고있는 콥틱교회와 아랍권의 선교를 위해 애쓰고 있는 김신숙 사모(최초의 이짚트 선교사 미망인)와 선교사님들의 어려움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있었으며 신앙의 자유를 만끽하면서도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해서...”핑게대는 우리들을 생각해도았다.

  이짚트하면 누구나 이야기할 수 있는 피라믿과 스핑크스로 피라믿(3개중 큰것:“쿠푸“왕의 무덤으로 세계7대 불가사의 중의 하나로서 BC2580년경 약24년에 걸처서 완성, 가로,세로235m, 높이 147m, 무게599만톤으로 지상 70미터 부근에 석실이 잇고 공기통로까지 만들어 졌다고함)과 왕이나 왕비의 무덤을 지키는 파수군 ”스핑크스“는 많이 있었다고 하나 현재 남아 형체를 남긴 것은 하나이며 그나마 훼손이 많이되어가고 있는 현실을 관람하면서 그 옛날에 무슨 힘이 있었기에 거대하고 아마 어마한 바위덩어리를 벽돌 다루듯이 육면체로 다듬어서 차곡차곡 쌓아올렸는지? 와서 보기 전에는 조금 큰 벽돌로 쌓아올리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하였는데 돌 한개가 2~5톤이라니 불가사의한 사건임에는 틀림이없는 것 같았다. 3개중 작은 피라믿은 내부를 공개하여서 누구나 들어가 볼 수 있었다. 관광객들의 통설은 “들어가 보아도 후회하고, 안들어가 보아도 후회한다고 하여 일행중 노약자는 삼가 달라는 안내원의 경고로 10여명이 들어갔다. 35~36℃의 날씨에 통풍이 안되고 좁은 길로 30여 미터를 30°~ 45°아래로 들어가는데 숨이 막힐 지경이었고 나오는 사람들과 약간의 몸싸움도 있어서 어려웠으나 막상 아래는 아무것도 없이 발굴이 되었고 시원하였다.

  옛날 이짚트 사람들은 죽음후의 “미라”를 중요시하였구나 하는 생각이 고고학박물관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한 미라에 이어 다시 한번 깨닫게 하였다.    

  피라믿과 스핑크스를 관람한 기자(Gizi)지구외 카이로지역의 풍경들은 마치 지진후의 모습이나 전쟁현장의 느낌을 방불케하였다. 이 나라는 건축법이 공사시작은 있으나 마치는 준공일자가 명시가 되어 있지 않아서 세금(등록세, 취득세)내지 않기 위하여 거의 모든 건물들이 공사중인 상태로 살고 있으며 비가 오지 않으므로 방수문제도 없고 또한 페인팅을 하지 않으므로 공사현장인 상태로 살고 있었다.

  

                                                 피라밑과 스핑크스

 

                                                 피라밑 (돌한개가 3-5톤)

 

 

  거리의 풍경은 고급 승용차에서 우마차까지 공유하며 신호등도 없고 보행자도 무질서하게 통행해서 정신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교통지옥 같았으나 그들 나름대로 살고있었고 우리나라 자동차들(현대, 대우, 기아)도 많이 눈에 띄었다.

  세계 최초의 종이라는 파피루스(paper의 유래: 우리나라 왕골과 흡사한 갈대를 가늘게 겹으로 나눈 다음 서로 가로 세로로 넓게 편 다음 압착기로 눌러서 수분을 없앤 다음 말리면 옛날 종이가 됨)생산 공정을 관람하고 한국식당(부일갈비)에서 상추를 곁들인 고기와 된장국으로 식사를 마치고 호텔로 돌아왔다.

  호텔(카타락트)은 이짚트에서 최고급이라는데 24시간 개방한다는 야외 수영장과 조그만한 동물원과 식물원도 있었으며 콘도미니엄 형태로 대개 10여동 3층건물로 대학캠퍼스와 유사한 느낌을 받았고, 호텔 내부는 넓었으며 화장실에 양변기 옆에 비데(큰 것 본후 물로 씻어내는 기구 : 가꿈 관광객들이 무엇인지 몰라서 그곳에서 머리를 감는다고 함)가 있었는데 나란히 있었다.

  호텔에 다시 찾아온 김일권 선교사님 부부와 만났는데 “이짚트는 밤의 나라”라서 낮에는 덥기에 주로 밤에 업무들을 본다면서 나일 강변에 위치한 “나일 호텔”의 스카이 라운지에서 카이로의 야경과 나일강을 내려다보면서 선교사님 내외분의 선교 사역에 관하여 이야기를 나눈 후 돌아오는 길(이스라엘 관광후)에 다시 재회를 약속하고, 호텔로 돌아와 비행기에서 못이룬 1박을 더하여 곤하게 자고 6시 모닝콜보다 일찍 일어나 호텔경내를 산책하고 호텔식(조식 : 빵을 위주로 한 식사)을 마친후 현지인들의 연주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버스에 몸을 싣고 출애굽 여정길에 올랐다


<출애굽 여정>

기자지구의 카타락트 호텔을 출발한 우리일행을 태운 버스는 현지가이드(강은영집사)외에 견습가이드와 관광경찰관 1명을 싣고 옛모습을 간직한 구카이로와 신시가지와 새로운 시설을 한 신카이로를 지나 이짚트의 무덤 건물(그들은 건물을 짇고 건물안에 시신을 안치한 장례문화)마을을 지나 100여 킬로를 지나 수에즈운하 근처의 한 가게에 이르러서 준비해 왔던 한식 도시락으로 중식을 먹고 휴식을 취하고 말은 안통하지만 장사를 잘하는 여 종업원의 안내를 받아 선물들을 구입하고 지금은 수에즈 운하로 되어있는 홍해를 터널로 지나가서 6일 전쟁시 격전지에서 잠시 내려서 맑은 홍해에서 사진을 찍은 다음 쓴물이 나와 불평을 하였다는 “마라(아이무사)”에 이르러 우리 일행은 감사기도를 드리고 베두인들의 노점 가게를 둘러보고 시나이반도 서안(홍해연안)을 따라 길을 떠났다.


  50여 킬로를 달리면서 “오늘 집을 나서기 전 기도했나요....”, “구원으로 인도하는 ...”등의 찬송을 부르면서 사막을 계속 달려 “함만 파라오(바로의 온천)” 도착하였다.  노천의 미개발된 자연 유황온천으로 뜨거워서 발을 디딜 수 없을 정도의 물이 홍해로 흘러들어서 그 부근의 고기들이 수온 때문인지 죽어있는 것을 보면서 수영을 했으면 원했지만 시간상 발욕을 하면서 멀리 바다건너 석유 유전에서 불을 뿜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이 부근이 세계 대부분의 석유를 생산하는 지역이구나 생각도 하고 또한 이 물이 인도양을 거쳐 남지나해, 동지나해를 거쳐 태평양으로 연결되어 인천 앞 바다까지 연결되는 지구상의 거의 모든 바다와 연결되겠구나 생각하며 지구의 크기를 가늠해 보았다.       

 

                                                    마라(아이무사)의 쓴물

 

  함만 파라오를 뒤로하고 시나이 반도 내륙으로 방향을 바꾸어 신광야를 달리다 보니 그랜드 캐년을 방불케하는 사막의 계곡을 지나 출애굽 여정의 아멜렉과 첫 번째 전투를 벌렸던 “르비딤”이르니 여호수와와 백성들이을 지휘했던 산이 나타났으며 우리일행도 그곳에 올라가서 모세와 아론과 홀이 이곳에서 모세의 손이 올라가면 이스라엘이 이겼다는 성경말씀(출17장)을 떠올렸다.

  

  여정이 계속되면서 가이드는 다음날의 시내산 등정시  즉 낙타를 탈 때, 팁(박시시)을 줄 때, 예배의 순서 및 모닝콜등의 주의사항을 들으며 어둠이 시작되는 시간에 약 1500미터의 시내산 중턱마을인 시내산 프라자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호텔은 최근에 완공되어 보이며 산꼭대기인대도 옥외 풀장도 있었고 좋았지만 호텔은 여러 동으로 나뉘어 있어서 호실을 어렵게 찾게 되어있었다. 구내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새벽 1시 기상이라는 중압감에 일찍 취침에 들어가 자는등 마는둥 하고 새벽에 일어나 등산준비로 손전등과 여벌옷과 성경찬송을 갖추고 등산길에 나셨으나 너무나 많은 인파에 낙타는 없었고 칠흙같은 어두움에 각국의 인파들의 대열에 휩쓸려 일행도 뿔뿔이 흩어져서 손전등에 의지하여 앞만 보고 올라가기를 3시간 만에 2285미터의 모세가 십계명을 받았던 거룩한 “시내산”에 올라 보니 주위의 온통 산은 풀 한포기 보이지 않는 바위산이었고 동이트고 있는 중에 우리 일행은 자리를 잡고 시내산 등정예배를 드렸다. 많은 일행중에 우리외에도 한국교인들이 3~4팀이 있었고, 일본팀도 있었으며 유럽등지의 성도들이 많은 것 같았으나 이곳에 오른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자녀들이며, 수천년 전의 모세가 십계명 받은 그곳을 순례한다는 거룩한 마음들이 있었기에 어려운 시내산을 등정할 수 있었음을 하나님께 다시한번 감사드렸다.  내려오는 길은 낙타와 사람들의 발짜국에 먼지 범벅이었으나 힘이 덜들었고 홀가분하게 내려와서 호텔에서 아침을 먹고 짐을 꾸린 다음 “떨기나무”와 “이드로의 우물”이 있는 “성 캐드린 수도원”에 이르러 관람을 하고 한참 버스를 달려 아카바 만의 “누바이”란 도시의 한국인 이 경영하는 “한강식당”에서 푸짐하게 상추와 된장과 된장국으로 점식 식사를 하고 국경도시 “타바”를 향해 달렸다.      

 

 

                                       시내산 꼭대기(모세가 십계명 받은 곳)

                                                시내산 올라다니는 낙타

                  성 캐더린 수도원(떨기나무와 이드로의 우물 등 유물이 많이 소장되어 있는 곳)


  국경도시 타바에 이르렀을 때는 이짚트쪽의 출국수속은 간단하였으나 이스라엘측의 입국수속은 현재 분쟁상태이고 2억명의 아랍국가에 둘러 쌓여있는 국가라서 인지 시간도 많이 걸리고 자세하게 짐 검사를 하였다. 이스라엘을 남자 3년, 여자 2년의 의무 군복무가 부가되어서 인지 여자 검사원중의 책임자가 먼저 면담 후 짐 검사를 해야할 여행객과 그냥 통과할 여행객을 구별시키는데, 나이가 많고 비교적 짐이 가벼운(노약자)는 통과시켰으나 우리 일행중 이스라엘에 장기채류를 하기 위해 들어가는 목사님이 계셔서 많은 시간을 보낸 다음 어렵게 주님이 낳고, 자라고, 사역하시고, 고난 당하시고, 부활 승천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