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순례

성지순례(이집트-이스라엘, 2001.3.26-4.4)-이집트

ksn7332 2023. 1. 1. 22:48

성지순례(holy land pilgrim) ---1---

하나님의 은혜로 몸담고있는 학교의 안식년(연구년) 기회를 이용하여 910일의 이짚트, 이스라엘 성지순례를 다녀왔습니다.(극동방송주관으로 천지항공팀: 목사 12, 사모 9, 장로 5, 권사 3분 집사 3, 기타2분 합계35)

 

<출발에서 애굽 정착까지>

지난 326일 밤930분 대한항공(KE951)으로 김포공항을 이륙하여 44일 새벽 6시 대한항공(KE952:좌석 55D)으로 인천공항에 착륙하였다....

떠난 비행기는 남으로 제주부근에서 상해, 남경, 미얀마, 인도상공을 날아 두바이(아랍에미레이트) 공항에서 1시간 반을 기착한 후 무려 17시간 만에 세계3대 문명발생지의 하나인 아프리카의 북단 나일강 하류인 이짚트의 수도인 카이로 공항에 착륙하였다. 연락이 되었던 김일권 선교사님이 공항에 나오셨으므로 오동헌군이 전한 고추장 등과 본인이 준비한 라면 한 박스와 김포공항 면세점에서 산 약간의 김을 전달하고 저녁에 호텔에서 재회할 것을 약속하고 일행과 합류하여 3끼의 기내식에 속이 더부룩함에도 불구하고 아침 9(한국시간 호후4: 시차 7)라고 아침 식사(한식:池食堂,나일강 건너편)를 간단히 하였다.

이짚트의 고고학 박물관에서 물병을 차고 땀을 닦으며 죽은자들을 위한 문화라 불리는 웅장한 석조 조각물들을 보았는데 당시의 모든 사람들이 왕과 신전만을 위한 삶이었고 왕과 왕족의 미라라든가 그 특정인들의 생활사만을 부각시켰고 백성들의 생활사는 보기 어려웠다.

 

아기예수가 베들레헴에서 탄생했을 때 헤롯의 죽임을 피해 애굽으로 피난했던 예수님의 피난처인 아기예수 기념교회와 근처의 모세가 출애굽할 때에 예배드렸다는 교회와 이짚트의 기독교 콥틱교회를 돌아보았으며 회교국가에서 어렵게 지탱해 가고있는 콥틱교회와 아랍권의 선교를 위해 애쓰고 있는 김신숙 사모(최초의 이짚트 선교사 미망인)와 선교사님들의 어려움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있었으며 신앙의 자유를 만끽하면서도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해서...”핑게대는 우리들을 생각해도았다.

이짚트하면 누구나 이야기할 수 있는 피라믿과 스핑크스로 피라믿(3개중 큰것:“쿠푸왕의 무덤으로 세계7대 불가사의 중의 하나로서 BC2580년경 약24년에 걸처서 완성, 가로,세로235m, 높이 147m, 무게599만톤으로 지상 70미터 부근에 석실이 잇고 공기통로까지 만들어 졌다고함)과 왕이나 왕비의 무덤을 지키는 파수군 스핑크스는 많이 있었다고 하나 현재 남아 형체를 남긴 것은 하나이며 그나마 훼손이 많이되어가고 있는 현실을 관람하면서 그 옛날에 무슨 힘이 있었기에 거대하고 아마 어마한 바위덩어리를 벽돌 다루듯이 육면체로 다듬어서 차곡차곡 쌓아올렸는지? 와서 보기 전에는 조금 큰 벽돌로 쌓아올리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하였는데 돌 한개가 25톤이라니 불가사의한 사건임에는 틀림이없는 것 같았다. 3개중 작은 피라믿은 내부를 공개하여서 누구나 들어가 볼 수 있었다. 관광객들의 통설은 들어가 보아도 후회하고, 안들어가 보아도 후회한다고 하여 일행중 노약자는 삼가 달라는 안내원의 경고로 10여명이 들어갔다. 3536의 날씨에 통풍이 안되고 좁은 길로 30여 미터를 30° 45°아래로 들어가는데 숨이 막힐 지경이었고 나오는 사람들과 약간의 몸싸움도 있어서 어려웠으나 막상 아래는 아무것도 없이 발굴이 되었고 시원하였다.

옛날 이짚트 사람들은 죽음후의 미라를 중요시하였구나 하는 생각이 고고학박물관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한 미라에 이어 다시 한번 깨닫게 하였다.

피라믿과 스핑크스를 관람한 기자(Gizi)지구외 카이로지역의 풍경들은 마치 지진후의 모습이나 전쟁현장의 느낌을 방불케하였다. 이 나라는 건축법이 공사시작은 있으나 마치는 준공일자가 명시가 되어 있지 않아서 세금(등록세, 취득세)내지 않기 위하여 거의 모든 건물들이 공사중인 상태로 살고 있으며 비가 오지 않으므로 방수문제도 없고 또한 페인팅을 하지 않으므로 공사현장인 상태로 살고 있었다.

거리의 풍경은 고급 승용차에서 우마차까지 공유하며 신호등도 없고 보행자도 무질서하게 통행해서 정신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교통지옥 같았으나 그들 나름대로 살고있었고 우리나라 자동차들(현대, 대우, 기아)도 많이 눈에 띄었다.

세계 최초의 종이라는 파피루스(paper의 유래: 우리나라 왕골과 흡사한 갈대를 가늘게 겹으로 나눈 다음 서로 가로 세로로 넓게 편 다음 압착기로 눌러서 수분을 없앤 다음 말리면 옛날 종이가 됨)생산 공정을 관람하고 한국식당(부일갈비)에서 상추를 곁들인 고기와 된장국으로 식사를 마치고 호텔로 돌아왔다.

호텔(카타락트)은 이짚트에서 최고급이라는데 24시간 개방한다는 야외 수영장과 조그만한 동물원과 식물원도 있었으며 콘도미니엄 형태로 대개 10여동 3층건물로 대학캠퍼스와 유사한 느낌을 받았고, 호텔 내부는 넓었으며 화장실에 양변기 옆에 비데(큰 것 본후 물로 씻어내는 기구 : 가꿈 관광객들이 무엇인지 몰라서 그곳에서 머리를 감는다고 함)가 있었는데 나란히 있었다.

호텔에 다시 찾아온 김일권 선교사님 부부와 만났는데 이짚트는 밤의 나라라서 낮에는 덥기에 주로 밤에 업무들을 본다면서 나일 강변에 위치한 나일 호텔의 스카이 라운지에서 카이로의 야경과 나일강을 내려다보면서 선교사님 내외분의 선교 사역에 관하여 이야기를 나눈 후 돌아오는 길(이스라엘 관광후)에 다시 재회를 약속하고, 호텔로 돌아와 비행기에서 못이룬 1박을 더하여 곤하게 자고 6시 모닝콜보다 일찍 일어나 호텔경내를 산책하고 호텔식(조식 : 빵을 위주로 한 식사)을 마친후 현지인들의 연주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버스에 몸을 싣고 출애굽 여정길에 올랐다

<출애굽 여정>

기자지구의 카타락트 호텔을 출발한 우리일행을 태운 버스는 현지가이드(강은영집사)외에 견습가이드와 관광경찰관 1명을 싣고 옛모습을 간직한 구카이로와 신시가지와 새로운 시설을 한 신카이로를 지나 이짚트의 무덤 건물(그들은 건물을 짇고 건물안에 시신을 안치한 장례문화)마을을 지나 100여 킬로를 지나 수에즈운하 근처의 한 가게에 이르러서 준비해 왔던 한식 도시락으로 중식을 먹고 휴식을 취하고 말은 안 통하지만 장사를 잘하는 여 종업원의 안내를 받아 선물들을 구입하고 지금은 수에즈 운하로 되어있는 홍해를 터널로 지나가서 6일 전쟁시 격전지에서 잠시 내려서 맑은 홍해에서 사진을 찍은 다음 쓴물이 나와 불평을 하였다는 마라(아이무사)”에 이르러 우리 일행은 감사기도를 드리고 베두인들의 노점 가게를 둘러보고 시나이반도 서안(홍해연안)을 따라 길을 떠났다.

50여 킬로를 달리면서 오늘 집을 나서기 전 기도했나요....”, “구원으로 인도하는 ...”등의 찬송을 부르면서 사막을 계속 달려 함만 파라오(바로의 온천)” 도착하였다. 노천의 미개발된 자연 유황온천으로 뜨거워서 발을 디딜 수 없을 정도의 물이 홍해로 흘러들어서 그 부근의 고기들이 수온 때문인지 죽어있는 것을 보면서 수영을 했으면 원했지만 시간상 발욕을 하면서 멀리 바다건너 석유 유전에서 불을 뿜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이 부근이 세계 대부분의 석유를 생산하는 지역이구나 생각도 하고 또한 이 물이 인도양을 거쳐 남지나해, 동지나해를 거쳐 태평양으로 연결되어 인천 앞 바다까지 연결되는 지구상의 거의 모든 바다와 연결되겠구나 생각하며 지구의 크기를 가늠해 보았다.

함만 파라오를 뒤로하고 시나이 반도 내륙으로 방향을 바꾸어 신광야를 달리다 보니 그랜드 캐년을 방불케하는 사막의 계곡을 지나 출애굽 여정의 아멜렉과 첫 번째 전투를 벌렸던 르비딤이르니 여호수와와 백성들이을 지휘했던 산이 나타났으며 우리일행도 그곳에 올라가서 모세와 아론과 홀이 이곳에서 모세의 손이 올라가면 이스라엘이 이겼다는 성경말씀(17)을 떠올렸다.

여정이 계속되면서 가이드는 다음날의 시내산 등정시 즉 낙타를 탈 때, (박시시)을 줄 때, 예배의 순서 및 모닝콜등의 주의사항을 들으며 어둠이 시작되는 시간에 약 1500미터의 시내산 중턱마을인 시내산 프라자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호텔은 최근에 완공되어 보이며 산꼭대기인대도 옥외 풀장도 있었고 좋았지만 호텔은 여러 동으로 나뉘어 있어서 호실을 어렵게 찾게 되어있었다. 구내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새벽 1시 기상이라는 중압감에 일찍 취침에 들어가 자는등 마는둥 하고 새벽에 일어나 등산준비로 손전등과 여벌옷과 성경찬송을 갖추고 등산길에 나셨으나 너무나 많은 인파에 낙타는 없었고 칠흙같은 어두움에 각국의 인파들의 대열에 휩쓸려 일행도 뿔뿔이 흩어져서 손전등에 의지하여 앞만 보고 올라가기를 3시간 만에 2285미터의 모세가 십계명을 받았던 거룩한 시내산에 올라 보니 주위의 온통 산은 풀 한포기 보이지 않는 바위산이었고 동이트고 있는 중에 우리 일행은 자리를 잡고 시내산 등정예배를 드렸다. 많은 일행중에 우리외에도 한국교인들이 34팀이 있었고, 일본팀도 있었으며 유럽등지의 성도들이 많은 것 같았으나 이곳에 오른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자녀들이며, 수천년 전의 모세가 십계명 받은 그곳을 순례한다는 거룩한 마음들이 있었기에 어려운 시내산을 등정할 수 있었음을 하나님께 다시한번 감사드렸다. 내려오는 길은 낙타와 사람들의 발짜국에 먼지 범벅이었으나 힘이 덜들었고 홀가분하게 내려와서 호텔에서 아침을 먹고 짐을 꾸린 다음 떨기나무 이드로의 우물이 있는 성 캐드린 수도원에 이르러 관람을 하고 한참 버스를 달려 아카바 만의 누바이란 도시의 한국인 이 경영하는 한강식당에서 푸짐하게 상추와 된장과 된장국으로 점식 식사를 하고 국경도시 타바를 향해 달렸다.

 

국경도시 타바에 이르렀을 때는 이짚트쪽의 출국수속은 간단하였으나 이스라엘측의 입국수속은 현재 분쟁상태이고 2억명의 아랍국가에 둘러 쌓여있는 국가라서 인지 시간도 많이 걸리고 자세하게 짐 검사를 하였다. 이스라엘을 남자 3, 여자 2년의 의무 군복무가 부가되어서 인지 여자 검사원중의 책임자가 먼저 면담 후 짐검사를 해야할 여행객과 그냥 통과할 여행객을 구별시키는데, 나이가 많고 비교적 짐이 가벼운(노약자)는 통과시켰으나 우리 일행중 이스라엘에 장기채류를 하기 위해 들어가는 목사님이 계셔서 많은 시간을 보낸 다음 어렵게 주님이 낳고, 자라고, 사역하시고, 고난 당하시고, 부활 승천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에 들어 갔다.

 

성지순례(holy land pilgrim) ---2---

타바를 통과하면서 세상이 달라 보인다. 3000$소득의 이짚트와 20000$소득의 이스라엘의 차이라고 가이드 최은호목사님은 말한다. 푸른 물이 출렁대는 바닷가엔 휴가를 즐기는 수영객들이 있었고 바다건너에는 요르단의 요충항인 아카바항이 보이더니 조금 더가니 이스라엘의 남쪽항 에일라트에 이른다. 각국에서 수입된 자동차들이 산적해 있고, 비행장도 있으며 활기가 넘치는 도시를 뒤로하고 네게브 사막을 가로질러 였으며 사막에 물이 넘쳐흐른다복음송과 같이 사막한 가운데 종려나무 농장이 군데군데 있었고 나무 한 그루마다 인공 물줄기를 비닐 호수를 통해서 공급하는 모습을 보면서 철 따라 우로를 내려주는 우리 나라 금수강산을 생각하며 마음속으로 감사의 기도를 드리면서 달리다 보니 비가 올 때만 하천이 되는 메마른 계절천(와디)군을 지나서 어느덧 소돔과 고모라 땅에 들어서 뒤돌아보다가 소금기둥이 되었다는 롯의 처 바위에 도착하여 온통 땅이 소금기로 이루어진 것을 확인하고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뒤돌아 서지 않겠네 찬양하며 해발-400m의 사해(dead sea)를 옆으로 하고 산위의 도시인 아라드(해발 600m)에 도착하여 인바(inbar)호텔에 이스라엘의 첫밤을 보냈다. 비교적 작은 호텔이었지만 실내 수영장이 있어서 날씨도 후덥지근하여 일행들과 수영장에 갔더니 작은 풀장은 사해물이고 큰 풀장은 일반물이어서 사해물에서 뜨는 것을 확인하고 취침에 들어갔다.

 

330일 아라드를 출발하여 다시 사해 근처로 내려오니 1000m의 위치차로 인해 귀가 멍멍해진다. BC 40년경 헤롯이 유사시에 대비하여 쌓았다는 이스라엘 최대의 요새 마사다(Massada)"에 도착하여 5분여 슬라이드를 보고 케이블 카로 사해면 610m 높이의 현장에 도착하여 물저장 탱크, 헤롯 궁전, 목욕탕등의 시설을 보았다. 이곳은 AD70년 로마의 티투스 장군이 예루살렘을 침공할 때 항쟁하다가 960명의 유대 애국지사들이 엘리아살 벤 야일의 지도하에 이곳에 와서 마지막 항쟁을 하다가 3년 포위 끝에 공격용 토성을 쌓고 올라오는 로마군에게 함락 되기전 최후의 날이 온줄 알고 로마군에게 항복하여 노예가 되느니 스스로 죽음을 택하기로 결의하고 모두가 죽고 말았다는 곳으로 역사가 요세프스는 죽음이 재앙이 아니라 살아있는 것이 재앙이다. 우리 아내와 자식들이 욕을 당하고 노예가 되는 것을 볼 수 없다. 우리에게 자유가 있고, 칼이 있을 때 자유인으로서 영광스럽게 죽자는 연설을 하고 제비 뽑아 열사람을 택하여 이들이 칼로 모두를 죽이고 다시 열사람이 한 사람을 아홉 사람을 죽인 후 자신은 자결하였다 하는데 이 사실은 마사다를 점령하고 수색도중 식량창고에 다섯명의 어린이와 두 여인이 살아 있었는데 이들의 입을 통해 전해졌다 한다. 모두들 마음이 숙연해 하면서 마사다를 내려와서 엔게디에서 지구상에서 유일한 해면보다 400m 나 아래 위치한 사해호수에서 수영을 하고 그 옛날 크래오파트라가 즐겼다는 머드팩도한 후에 사해변의 프른 초장에서 점심(한식도시락)을 먹고 사해 사본으로 유명한 쿰란에서 설명을 듣고 쇼핑을 한다음 좌측에 엘리야 기념 수도원, 우측에 모세가 가나안 땅을 내려다보면서 죽은 "느보산"을 동쪽으로 멀리 올려다 보면서 서쪽으로 예수님의 시험산을 보면서 아쉽게도 분쟁으로 삭개오의 뽕나무 동내인 "여리고"(팔레스타인 자치령)를 우회하여 가나안 복지땅인 요단강변을 따라 에브라임산지, 사마리아산지. 얍복강을 지나길 보아산과 벳산을 지나 갈릴리(-200m)바다(디베랴호수)도착 하였다.

 

갈릴리 호수에서 사해 쪽으로 흐르는 강이 요단강인데 비가 적은 지방이라 요단강이라기 보다는 요단 개울이라 할 만큼 물의 량이 적었고 호수하수구 쪽은 물이 많은 편으로 이곳이 예수님께서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았던 곳으로 오늘날도 침례교 순례자들은 이곳에서 가끔 세례를 베풀기고 한다는데 팔뚝만큼한 메기(유대인들은 비늘없는 고기는 먹지 않으므로)들이 고기반 물반일 만큼 많았다.

버스가 도착한 곳은 티베라아시의 갈릴리호수 선착장으로 예정된 선상예배를 드리기위해 배를 타려하였으나 큰 유람선은 우리 일행이 예배드리기에 적합치 않아 한참을 기다리다 예수님 당시의 배와 크기가 같게 제작했다는 작은 목선을 타고 호수 한가운데에 이르러 예배를 드리고 티베리아시에 위치한 호수가 내려다 보이는 티베리아 호텔에서 여정을 풀었다.

 

<사역지에서 ...>

티베리아 호텔은 이스라엘의 풍습이 밤 시간에 결혼식을 올리는 지 찬치 분위기였으며 한쪽 홀에서는 신랑 신부와 친구 친지들이 춤을 추며 연회중이였는대 일행중 몇분이 구경을 갔더니 끌어당겨서 같이 어울리기도 하였고 앞에 호수가 내려다 보여서 전망도 좋았다. 아침에 새들의 노래소리에 일어났다. "예쁜새들 노래하는 아름다운 갈랄리"답게 새소리 때문에 모닝 콜보다 훨씬 일찍 기상하여 헬몬산의 만년설을 멀리 바라보며 호텔 조식후 주님의 사역지로 달려 첫 번째로 막달라 마을의 막달라 마라아 묘를 보면서 "휘어져 추수할때"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상기하면서 들판을 바라보면서 예수님의 사역지인 오병이어교회에 다다르니 아담한 기념교회내부에 예수님께서 축사하셨다는 장소에 보리떡4개와 물고기 2마리가 모자이크되어 있었는데 보리떠 한 개는 들고 축사하시는 중이라고 하였다. "깊은 곳에 그물을 던저라"라는 주님의 명령으로 "주는 그리스도요..."고백했던 곳과 가버나움, 팔복교회, 고라신등을 순례하고 가나 혼인잔치로 유명한 "가나"를 거쳐 이새 줄기의 가지란 뜻을 가진 예수님의 고향 나사렛이 이르러 마리아의 수태고지교회를 거처 이스라엘 수박 맛도 보고, 갈멜산밑 교민댁에서 점심 식사 후 엘리야 선지자가 바알신과 아세라를 물리친 갈멜산수도원에서 기손강을 내려다보면서 민족과 교회를 위해 통성기도도 각각의 기도처소에서 드렸다.

이스라엘의 최대 평야인 이즈르엘평야를 지나 가나안의 정복의 가장 으뜸으로 중요시했다는 므깃도에 이르러 악명 높았던 아합왕이 용수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하터널을 건설했다는 거대한 지하터널을 통과하여, BC20년경에 헤롯이 로마황제 가아사 아우구스투스의 이름을 따서 건설했다는 지중해연안의 고도 가이사랴에 도착하였다. 500년간 총독부의 본부(수도)로 사용했다는 거대한 도시로 원형경기장 등 거대한 유적들을 둘러보고, 이스라엘 최대도시인 텔아비브를 거처 거룩한성이 있었던 예루살렘 샬롬호텔에 도착하였다.

 

샬롬호텔에 도착한 날은 안식일 다음날(토요일)이라 안식일 휴일을 호텔에서 가족단위로 보낸 전통 유대인들이 긴 수염과 검은 의상들을 입고 층층마다 여러무리들이 있었다. 1박후 주일아침이라 2층 특별실에서 주일예배를 드리고 예루살렘시내 관광을 위해 첫 번째로 간곳은 예루살렘성전과 기드론 골짜기등 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성전 동편 언덕에 유사시에는 벙커역할을 할 수 있게 설계되었다는 히브리대학(6일 전쟁이전에는 요르단땅)에서 한눈에 예루살렘의 구시가지 전체를 내려다 보면서 설명을 들은후 승천교회, “학개선지자 무덤, 눈물교회, 미문을 바라보면서, 주님께서 나귀타고 호산나하고 입성하신곳(지금도 나귀와 아랍인인 있슴), 아론의 살구나무, 겟세마네 동산, 스데반 기념교회, 골고다 언덕, 십자가를 메셨던 14곳의 처소. 마가의 다락방, 경계가 삼엄했던 통곡의 벽 등등 관광후 불렛셋과 이스라엘군의 분쟁이 한창인, 팔레스타인 자치지구인 베들레헴(예수님 낳으신곳, 다윗의 여호와는 나의 목자불렀덤곳, 모압여인 롯이 보아스를 만난곳)을 어렵게 옵션으로 순례하고 용서는 하되 잊지는 말자라는 슬로건을 내세운유대인 학살 기념관을 관람하고 다시 샬롬호텔로 돌아와 1박후 가자지구를 통해서 이짚트로 들어갈 예정이었으나 한창 분쟁 중이라 국경이 폐쇄되었다는 통보로 넘어왔었던 아카바만의 타바국경을 통하여 약1000km를 달려서 카이로에 와서 카타락트 호텔에 도착하여 김일권 선교사내외분과 만나서 망고쥬스을 마시면서 황치현 전도사님의 부탁물건과 오동헌군의 선물인 호박씨를 전달받아 1박후 15시간의 항공기를 타고 두바이를 경유하여 지구상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 “ 삼천리 금수강산”, “철따라 우로도 내리고 4계절이 확실한 사랑하는 나의 조국 인천공항에 돌아왔다. 중동지역은 봄, 가을 이 없어서 벌써 35~36도를 오르내리는 한여름으로 땀을 닦으며 물을 마시며 다녔으며 광활한 땅으로 버려둔 땅”, 어쩌면 남겨둔 땅들이 많았으며 몇 시간을 달려도 끝없는 사막이었고 그곳의 강수량은 년간 10~50mm로 물만 있다면 옥토일것 같았다. 이짚트는 땅은 넓고 인구도 많았으나 나태하여 못살고(3000$), 이스라엘은 물관리를 잘해서 젓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스스로 땀흘려 건설하면서 그들의 꿈을 실현해 나간다는 느낌을 감명 깊게 받았다.(20000$).

이번 성지순례를 통하여 지금까지의 성경 이해에 도움이 많을 것 같으며, 나의 마음 밭을 기경(起耕)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9 10일 동안 출애굽 여정과 주님께서 낳고, 자라고, 사역하시고, 부활 승천하신 성지를 순례하는 동안 지켜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3박자(시간, 금전, 건강)를 갖추지 못하여 성지순례를 못 다녀오신 권속 여러분께 죄송한 마음을 가지며 보고를 마칩니다.

 

2001 4 6일 홍보부 김 상 남 장로